사피엔스

 

우리는 형제자매가 없는 탓에 스스로가 창조의 최고 샘플이며, 우리와 나머지 동물계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고 상상하기 쉽다. (40)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 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야생 닭의 자연 수명은 7~12년이고 소는 20~25년이다. 대부분의 야생 닭과 소는 그 이전에 죽었지만, 상당히 오래 살 가능성도 있었다. 황소와 말, 당나귀와 낙타를 순종적인 짐끌이 동물로 바꾸려면, 이들의 자연적 본능과 사회적 유대를 파괴하고 공격성과 성적 특질을 억누르고 행동의 자유를 빼앗아야 했다. (143)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겠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156)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216)

프랑스 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항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볼 수 있다. (237)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출동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98)

이신교는 이른바 악의 문제에 간명한 해답을 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전지전능하며 완벽하게 선한 하느님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알려진 하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일 그 인물이 자유의지로써 악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신이 미리 알았다면, 신은 왜 그를 창조했을까? (313)

학문의 분과로서의 역사학이 지닌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역사 시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왜 하필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른 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338)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357)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359)

15~16세기 유럽인들은 빈 공간이 많은 세계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럽인의 제국주의 욕구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빈 지도는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약적인 진전이었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405)

산업역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을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480)

지난 5백 년은 깜짝 놀랄 만한 혁명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시기였다. 지구는 단일한 생태적, 역사적 근원으로 통일되었다. 과학과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초인적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무한한 에너지원의 발견은 우리 앞에 무한한 행복의 창고를 열어주었는가? (530)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552-553)

 


유발 하라리는 현생인류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해 역사학, 생물학적 관점으로 서술한다.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일궈낸 일들(대표적으로 농업혁명)을 우리는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만 배우지만 그 이면에 어떤 악영향이 존재했는지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 비판한다. 더불어 코앞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에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 또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사피엔스는 전부터 읽긴 읽을 거라고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읽게 됐다. 사실 몇달 전부터 잠들기 전에 가끔씩 유발 하라리의 강연을 들으면서 잤기 때문에 하라리의 가치관(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겠지)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책 읽어드립니다 를 통해서 알게 된 책의 내용도 있어서 읽으면서 너무 어렵다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많이 없었다. 

요즘엔 이렇게 내가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더 깊게 통찰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편협한 시각만 가진 채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그리고 유난히 "왜?" 라는 질문(대부분 존재론적 의문)이 너무 많고 궁금증을 풀지 못하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 그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보통 나 자신에 대한 대부분을 싫어하지만, 이런 부분만큼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왠지 유명한 책일수록 실제로 읽어보지 않고 대충 들어본 이야기로 신랄하게 책과 저자를 까내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달까... 특히나 이런 분야의 책을 쓸 때 저자는 수많은 논문을 조사하며 쓰는데, 아무것도 자발적으로 알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적 태도'를 위장하며 별 잡소리를 해대는 게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어그로, 악플러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