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모든 존재는 증명하기 어렵고 말을 시키기도 어렵다. 그대 형제들이여, 나에게 말해 다오. 모든 사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가장 잘 증명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자아와 자아의 모순과 혼란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장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하고 의욕하고 평가하는 이 자아야말로 사물들의 척도이자 가치인 것이다. (46)

 

그러나 각성한 자, 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혼은 몸에 속하는 그 어떤 것을 표현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50)

 

그대들이 어리석음과 경멸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대들 몸을 경멸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자기에 봉사하고 있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그대들의 자기는 스스로가 죽음을 원하고 있으며 삶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52)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63)

 

인간은 높은 곳으로 그리고 밝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할수록 그 뿌리는 더욱더 강인하게 땅 속으로 파고들어 가려 한다네. 아래쪽으로, 어둠 속으로, 심연 속으로, 악 속으로 뻗어나가려 하는 거지. (68)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구나. 그대의 말보다 그대의 눈에 온갖 위험이 더 잘 나타나 있다.

그대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며, 아직도 자유를 찾아 헤매고 있다. 자유를 향한 그대의 갈망 때문에 그대를 잠들지도 못하고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

그대는 툭 트인 산꼭대기로 올라가고자 한다. 그대의 영혼은 별들을 갈망한다. 심지어 그대의 비천한 충동도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그대의 들개들은 자유를 바란다. 그대의 정신이 모든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들개들은 지하실에서 쾌락을 달라고 짖어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아직도 자유를 꿈꾸고 있는 죄수일 뿐이다. 아, 이러한 죄수의 영혼은 영리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교활해지고 사악해지기도 한다.

정신의 해방을 얻은 자는 다시 자기 자신을 정화애햐 한다. 아직도 많은 구속과 곰팡이가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더 순수해져야 한다.

그렇다. 아는 그대가 처한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사람과 희망을 걸고 그대에게 간절히 바라노니, 그대의 사랑과 희망을 던져버리지 마라! (70)

 

나는 그대들 마음속의 증오와 질투를 알고 있다. 그대들은 증오와 질투를 모를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증오와 질투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을 위대해지도록 하라! (76)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들의 주둥이와 욕망이 내뿜는 악취 속에서 질식할 셈인가? 차라리 창문을 깨고 시원한 바깥으로 뛰쳐나가라!

악취에서 벗어나라! 이 인간 쓰레기들이 벌이고 있는 우상 숭배로부터 벗어나라!

악취에서 벗어나라! 이들 인간 제물들이 내뿜는 후텁지근한 김에서 벗어나라!

위대한 영혼들에게 대지는 아직도 활짝 열려 있다. 조용한 바다 냄새가 감도는, 그런 자리가 혼자서 혹은 둘이서 은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위대한 영혼들에게는 아직도 자유로운 삶이 활짝 열려 있다. 참으로, 적게 소유한 자는 그만큼 더 적게 지배된다. 찬양할지어다. 소박한 가난을!

국가가 없어지는 곳, 그곳에서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들의 삶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꼭 있어야 할 자들의 노래, 단 한 번뿐이며 대체할 수 없는 그런 노래가 시작된다.

국가가 없어지는 곳. 그곳을 보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지개가, 초인으로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 (84)

 

형제여, 그대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려는가? 그대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는가? 그렇다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내 말을 들어보라.

"찾는 자는 쉽사리 길을 잃는다. 모든 고독은 죄악이다."라고 군중은 말한다. 그리고 그대는 오랫동안 군중에 속해 있지 않았던가.

군중의 목소리는 아직도 그대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너희들과 동일한 양심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그대는 비탄과 고통을 느끼리라.

보라. 이 고통 자체를 낳은 것도 바로 그 '동일한' 양심이었다. 그리고 이 양심의 꺼져가는 마지막 등불은 아직도 그대의 슬픔 위에서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다. (107-108)

 

그대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는가?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대가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지배하는 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대를 굴레로부터 벗어나도 좋은 그런 자인가?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자신의 마지막 가치조차도 내던져 버렸던 사람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냐고? 그것이 차라투스트라와 무슨 상관인가! 그대는 환한 눈길로 내게 말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108)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는 자신을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만이 경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몰랐던 자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그대의 사랑과 함께, 그리고 그대의 그대의 창조와 함게, 형제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서야 정의가 절름거리며 그대를 따라오리라. 

나의 눈물과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형제여.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려 하고, 그럼으로써 파멸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111)

 

죽음 앞에서도 그대들의 정신과 덕은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저녁놀처럼 활활 타올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들의 죽음은 실패이리라.

나 자신도 그렇게 죽고 싶다. 그리하여 그대들이 나로 인하려 이 대지를 더욱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를 낳아주었던 대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 안식을 얻고 싶다. (128)

 

그리고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이 세계는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심상,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도달하게 되리라! (147)

 


(아직 읽는 중)

사실을 고하자면, 작년 6월에 사서는 40페이지만 읽고 덮어버렸다. 너무 어려워서였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으니 굉장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글임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타이핑하니까 그 힘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한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yunicorn